화분

2021. 1. 7 (목) – 2021. 1. 19 (화)






벽 아래 놓인 화분들


자연은 우리들 삶의 자리로 파고들어 다양하게 서식한다. 그것은 식물의 욕망이기 이전에 인간의 욕망에 의해 파생된 흔적이다.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급격히 분리되고 벗어날수록 역설적으로 자연에 대한 동경과 향수를 키워가면서 이를 의사자연으로, 모조한 인공의 자연으로 대체해왔다. 실제 자연을 자기 삶의 공간으로 끌고 들어오는 역사는 오래되었고 그 방법도 다양하지만 근대 이후 이런 인식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렇게 우리들 삶의 환경에 들어온 의사자연을 다양하게 접하고 있다. 공원과 정원, 분재나 화분 그리고 꽃무늬 벽지나 식물 문양의 옷을 비롯해 풍경화 역시 그런 측면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도시라는 공간에서 자연과의 친화적 관계를 상실한 가난한 도시인들은 이런 식으로나마 자연의 일부를 간절히 실현하고 있다. 모조 자연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이 우리의 시야에서 급속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연 또한 본래의 모습을 잃고 맹렬히 지워지거나 변질되고 있다.


김승일은 우리들 삶의 공간 주변으로 흩어진 여러 식물을 본다. 제각기 화분에 담긴 식물들은 파리하고 초라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것들이 마땅히 거느리는 생의 본능을 악착스레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이 화분들은 화원이나 집 안에서 보살핌을 받는 것과는 달리 야외에서, 거친 조건 속에서 저 스스로 삶의 단락을 책임지는 것들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런 화분들을 하나씩 눈여겨보고 사진에 담았다. 식물의 초상사진이자 자신이 처한 그 허름한 공간에서 기죽지 않고 자라려는 식물의 자존감이 힘겹게 있다.


이 식물은 도시에 기생하는 이상한 존재들이다. 더구나 집 바깥으로 밀려나 길가와 담벼락 사이에 방치된 화분은 모호한 경계에 위치해있다. 인간에 의해 양육되고 있는지 혹은 버려진 것인지, 살아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궁금증을 유발한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주인의 손길에서 벗어나 길가에 놓인 화분은 모든 보살핌에서 벗어나 스스로 살아내야 하는 책임감을 안고 힘겹게 버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작가는 그 화분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시시하고 싫증이 난다고 쓰임을 다했다고 밀려나는 식물들’

도시공간이라는 환경 속의 이 식물, 화분 속에는 도시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가련한 동경이 서려 있다. 이 식물은 자연에서 밀려나 도시의 담벼락 밑과 골목 사이로 몰려들어 자연에 대한 동경과 상실, 꿈과 욕망을 참혹하게 발설한다. 도시 속에서 인간과 같이, 그 속에서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알 수 없는 여러 식물은 자신과 동일한 삶을 영위하는 도시 사람들을 또한 대리한다. 김승일의 사진 속 화분들은 척박한 조건 속에서 마냥 찌들어 있어 제대로 발육이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서서히 수분이 빠져나가며 말라가고 있고, 퇴색되어 가는 식물들은 하찮으면서도 이상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도시의 길가에서 발견한 매혹적인 정물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사진 속 식물들이 도시인들의 자연에 대한 가련한 동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그와 유사한 인간들의 생애를 참혹하게 발설한다는 것이다. 도시 속에서 인간과 함께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름 없는 풀들은 서글프게 아름답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의 운명 역시 그럴 것이다.


작가는 바닥에 놓인, 따라서 벽을 배경으로 소박하고 단출하게 놓인 화분을 초상사진처럼 찍었다. 이 개별적인 화분 안에는 당연히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뿌리박고 서 있거나 무너져내렸다. 화분은 각기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틀리며 다소 괴이한 문양과 키치적인 이미지를 두르고 있다. 벽의 색감과 화분의 색상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화분만큼이나 여러 종류의 식물이 흙을 밀어내고 자란다. 화분 바깥으로 자기 생을 힘껏, 온몸으로 몰고 나간 자취를 절실하게 허공에 띄운다. 저 스스로 식물임을 보여준다. 자기 뿌리를 믿고 올려내는 일은 스스로 삶에 책임지는 모습이다.


벽과 바닥 사이에 단독으로 설정된 이 화분은 그것 자체의 실존적 위상을 충분히 누수 하면서 직립해있다. 어쩌면 식물은 자신도 만만치 않은 생사고락을 겪어내는 존재임을 인간들에게 발언하는 동시에 자신의 생애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한 생명체의 실재를 보여준다.


이 화분은 대부분 시들거나 초라한 상태라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러니까 꽃, 식물의 실재는 꽃이라는 기호를 교란하고 모종의 트라우마를 만든다. 꽃이라는 기존의 익숙하고 상투화된 상징에서 미끄러져 나와 식물/생명체의 실재를 드러낸다고나 할까. 한편, 이 시들고 죽어가는 화분을 통해 우리는 꽃의 죽음과 덧없음과 파괴되는 모습을 목도한다. 사실 죽음 속에서만 모든 사물은 사물답게 존재하는 것이다.


화분 속 식물은 삶의 의미를 교란하는 죽음의 이미지이고 죽음이라는 덧없는 실재를 보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을 또한 건드린다. 그것이 꽃의 실재, 모든 생명 있는 존재의 실재임을 깨닫는다. 실재는 상징으로 나타날 수 없으며 상징에서 벗어나거나 상징에 저항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실재는 감당하기 어렵고 그래서 트라우마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작가는 시들고 볼품없어 보이는 그러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 화분을 통해 무수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모습, 우리의 모습을 이 화분 위에 겹쳐놓는다. 악착같은 생애를 지속하는 식물은 길바닥에 놓여있고 돌보지 않음에 따라 조금씩 말라가는 자기의 곡절 많은 생애를 잎과 가지로 뻗어낸다. 자기 생의 궤적을 벽을 배경으로 선을 만들어 보이며 가시화한다. 대부분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보는 이 장면을 별다른 드라마 없이 담담하게 보여주는 시선과 마음을 의미 있게 본다. 동시에 소박하고 간결한 대상들은 벽과 바닥, 그리고 화분의 색채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색상의 체계 속에서 반짝인다. 그리고 그 어딘가, 화분에서 올라오는 식물의 여러 머리들이, 몸이 짓는 선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만나고 있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



화분




어느 겨울날, 희미한 빛에 기대어 웅크리고 있는 코발트색의 화분을 보는 순간 불현듯 너덧 살에 열로 떠난 동생이 떠올랐다. 동생은 엄마 등에 업혀 저렇게 힘없는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런 순간에서 화초의 신화와 나무의 전설과 꽃의 꽃말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내 앞에 있는 저 화분은 스스로 그냥 존재하는 데 기억을 부르는 동생은 지금 여기 부재가 아니란 말인가. 그 후 망막을 찔러 오는 화분, 식물들은 주위의 누군가로 대치되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출가하고 독립한 자식들, 바다 건너 시집살이 간 누이, 병으로 조금씩 말라가던 당숙. 그리고 발 디딜 틈도 없이 화분을 들여놓고 잘도 키워내던 외숙모의 모습도 어른거렸다.


시시하고 싫증 나고 쓰임을 다했다고 밀려나 있는 식물들의 터. 화분을 집안에 들여놓기 시작한 곡절이야 있겠지만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추억을 불러오는 매개체가 된다면 단순한 사물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오늘도 무심한 화분, 식물 하나가 때맞춰 나를 만난다.


김승일




김승일




2016-17

고은사진미술관 사진아카데미 수료



2014-15

부산대 디지털사진아카데미 수료



개인전




2021

《화분》, Gp1826 올해의 작가전, 부산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 부산



2018

《라라랜드》, 김승일 초대전, 미르아트홀, 진주



2017

《라라랜드》, 포트폴리오반 선정 작가전, 부산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 부산




단체전




2020

《진주성》, 망경동 미로 갤러리 골목길 사진전, 진주프로젝트 기획전, 망경동 일원, 진주



2019

《보이지 않는, 말로 할 수 없는》, 제4회 GP1826 비엔날레, 해운대문화회관, 부산



2019

《Mind Scape》, 사진진주2019 특별기획전, 온갤러리, 진주



2018

《제2회 부산국제사진제》, 자유전, 부산디자인센터, 부산



2018

《낭만부산》, 부산대 디지털사진아카데미전, 해운대문화회관, 부산



2017

《UP》, 제3회 GP1826 비엔날레, 스페이스닻 갤러리, 부산



2015

《행행하다》, 부산대 디지털사진아카데미전, 해운대문화회관, 부산